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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5-1011(Print)
ISSN : 2288-1727(Online)
The Journal of Fisheries Business Administration Vol.52 No.3 pp.39-55
DOI : https://doi.org/10.12939/FBA.2021.52.3.039

Trends in North Korea’s Inland Water Fish Farming and Measures to Promote Inter-Korean Cooperation

Hui-Kwon Jin*
Senior researcher, Korea Maritime Institute, Busan, 49111, Korea
본 논문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인제대학교, 2020) “북한 수산업 정책 연구”의 일부를 수정ㆍ보완하였음.
*Corresponding author : https://orcid.org/0000-0002-4221-5531, +82-51-797-4766, hkjin77@gmail.com
08 September 2021 23 September 2021 23 September 2021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onfirm the trend of inland water fish farming in North Korea and to suggest a plan for inter-Korean cooperation. North Korea’s inland water fish farming laid the foundation for production in the 1950s and 1960s, and production facilities were expanded until 1980. In the midst of the severe economic crisis in the 1990s, North Korea paid attention to inland water fish farming as an alternative to food production. The military took the lead in expanding the aquaculture industry and catfish farming was encouraged. In the Kim Jong-un era, North Korea’s inland fish farming continues the tradition of catfish farming and promotes a policy of expanding inland cage farming. This study comprehensively reviewed recent inter-Korean relations, North Korea’s food crisis and acceptability, and UN sanctions. As a result, inland water fish farming is the most promising field for inter-Korean cooperation in the field of fisheries. In the initial stage of inter-Korean cooperation in the field of inland water fish farming, humanitarian aid projects such as feed and seed support can be promoted. In the stage of expanding inter-Korean cooperation, knowledge sharing program and materials and facilities support projects can be promoted. Development cooperation and direct private investment are possible at the full-scale stage.

북한 내수면 양식 동향과 남북협력 추진 방안

진희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전문연구원

초록


    I. 서 론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는 경색국면에 빠져 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북한은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홍수 등의 자연재해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북한의 식량난이 가중되고 있어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다1).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주요한 식량 수급원인 수산업 분야에서도 대북 인도적 지원을 비롯한 남북협력의 가능성을 고려해 볼 시기라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의 핵개발로 인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도적 지원의 추진도 쉽지 않다2). 대규모 설비나 군사적 전용이 의심되는 물자의 반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수산업 분야에서는 어선어업보다는 양식 분야의 인도적 지원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내수면 양식은 개발도상국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주요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세계 내 수면 수산물 생산은 지속적으로 성장, 전체 수산물 생산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다3). 국내에서도 내수면 양식 생산량은 2010년 13,443톤, 2015년 23,922톤, 2020년 25,700톤으로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4). 또한 내수면 어업의 생산량은 전체 어업 대비 1% 수준이지만 생산 금액은 5.7%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5).
     북한도 1990년대 대량 식량난을 겪으면서 내수면 양식 분야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총비서가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내수면 양식을 독려하는 상황이 자주 목격되고 있으며, 국내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또한 최근 북한이 UN에 제출한 VNR6) 중 “목표 2 농업분야의 지속가능한 발전 및 식량 자급자족”을 위한 계획에서 축산, 과일 재배 등과 함께 양어의 지속적인 발전을 제시했다. 위와 같이 내수면 양식 분야의 세계적 발전 추세, 북한의 식량난과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 최근 북한의 정책 동향을 종합해 보면 남북 수산업 협력 추진 방안의 하나로 내수면 양식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본 논문은 이를 검토하기 위해 김일성시대와 김정일시대 북한 내수면 양식 정책을 파악하고 김정은 시대 수산업과 내수면 양식 정책을 살펴보았다. 북한의 현실적 수요와 구체적 협력 사업의 발굴이라는 측면에서 필요한 접근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노동신문 등 북한의 언론자료와 문헌 및 여러 선 행연구를 검토하였다.
     남북한 수산협력에 대한 선행연구는 아래와 같다. 김현용 외(2006)는 남북한 수산협력사업의 중장기 추진방안을 제안하며, 북한 내수면 양식의 현황과 협력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황진회 외(2009)는 북한의 수산 과학기술 정책을 검토하고 기술수준을 남한과 비교하였다. 박성쾌(2015)는 북한 내수면 양식 상황을 검토하고 국제기구와 협력프레임워크 구성을 통한 내수면 양식 협력 사업을 제안하였다. 박준모(2014)는 기존 남북수산협력사업을 검토하고 북한 양식 기술자 초청 연수, 양식 시설ㆍ사료 지원 사업을 제안하였다. Robert Winstanley-Chesters(2020)는 북한의 시대별 어업정책을 소개하고 특징을 분석하였다. 이상과 같이 남북한 수산협력에 대한 선행연구는 주로 및 북한 수산업 동향을 다루고 수산 협력의 일부로 내수면을 검토하였다. 또한 북한 내수면 양식 동향도 거시적 시각에서 단기 현상을 파악했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북한 내수면 양식 정책을 시대별로 파악하고 정책 변화의 배경을 분 석하였다. 또한 북한의 수요를 기반으로 남북협력 사업 추진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1) Newsis(2021)에 따르면 FAO(유엔 식량농업기구) 등은 북한 식량 부족 사태를 경고하고 있으며, 국가정보원도 북한 1 년 곡물 수요량 548만 톤에 비해 100여 만 톤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2) 박준모(2019)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유엔은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에 따른 대응으로 안보리 결의 825호(1993.5.11.)를 채택한 이후 총 11차례의 대북 제재 결의를 진행했으며, 이로 인해 광범위한 대북 수출, 수입, 사업 금지가 시행 중이다. 특히 안보리 결의 2371(2017.8.5.)은 북한의 수산물 수출과 어업권 거래를 금 지했다. 아울러 미국도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북한과의 거래를 광범위하게 금지하고 있다.
    3) 해양수산부 양식산업과(2017).
    4) 현대해양(2021.6.8.)에 따르면 국내 내수면 양식 생산량은 27,000톤까지 증가하였으나, 2020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감소하였다.
    5) 해양수산부 양식산업과(2017).
    6)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Voluntary National Review On the Implementation of the 2030 Agenda

    Ⅱ. 김정은 시대 이전 북한의 내수면 양식7)

    1. 김일성 시대의 내수면 양식

     북한의 문헌에 따르면, 해방 이후 북한에 최초로 건설된 양어장은 국영 ‘립석양어장’이다8). ‘립석양 어장’은 1947년 8월 평안남도 강동군 립석리9)에 건설되었으며, 면적은 0.3km 2라고 한다. 이후 함경남도 고원과 평안북도에 각 한 개의 양어장이 새로 건설되었다10). 함경남도 고원에 건설된 양어장은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연어 인공부하장으로11), 평안북도의 양어장은 ‘구장양어장’으로 추정된다12). 6.25 전쟁 중이었던 1951년 5월 북한은 기존의 ‘중앙수산시험장’13)을 ‘중앙수산시험연구소’로 개편하고 내 수면인 수풍14), 구장, 립석에 분장을 설치했다15).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전에 북한은 기존 시설을 포함해 네 곳(립석, 구장, 고원, 수풍)의 내수면 양어 시설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구체적인 기술 수준이나 생산에 대한 자료는 확인할 수 없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은 전후복구 3개년 계획(1954~56년)을 세우고 대대적인 전후복구 작업에 착수했다. 이 계획에서 북한은 54년 27만 톤, 55년 40만 톤, 56년 50만 톤 수산업 생산 목표를 설정하고 어항복구, 어선 수리ㆍ건조, 어구 제작 등 대대적인 증산운동에 돌입했다16).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북한은 3개년 계획 기간 ‘담수양어연구소’를 신설하고 전국적으로 8개의 양어장 건설을 계획했으며, 50만 마리의 치어를 생산했다17). 북한의 기록에 따르면, 1957년에는 500만 마리의 치어를 생산할 수 있는 7개의 잉어 양어장과 160만 마리의 치어를 생산할 수 있는 3개의 칠색송어(무지개송어) 양어장이 운영되었다고 한다18). 
     
    7) 북한에서는 양어와 양식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물고기를 기르는 경우, 양어를 사용하고 물고기 외 바다 동식물 을 기르는 경우, 양식을 사용한다. 북한의 ‘조선말 대사전’에서는 양식을 “경제적으로 리로운 동식물 같은 것을 일정 한 구역 안에서 인공적으로 길러 번식시키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양식대상 항목에서는 “인공적으로 기를 만 한 쓸모있는 바다나물류와 바다동물류, 다시마, 참미역, 모래미역, 덩굴말(굴치) 등과 굴, 큰새우, 섭조개(홍합), 밥 조개(가리비), 해삼 등이 이에 속한다.”라고 설명하며, 양어는 “가치있는 물고기를 인공적인 방법으로 불쿠고 새끼고 기를 길러서 잡아내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광명백과사전은 해조류(바다나물)와 해양 무척추동물(패류, 갑 각류, 극피동물 등)을 ‘바다가양식’에 포함하며, 그 외 해양동물은 ‘양어’의 범주에 넣고 있다. 노동신문에서도 물고기 를 기르는 경우 양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그 외 해초류, 새우, 조개 등을 기르는 경우, 양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 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 본 논문에서는 북한의 현황을 설명하는 경우에는 일부 양어를 사 용하기로 한다.
    8) 박근순(1991).
    9) 평안남도 강동군 립석리는 오늘날 평양시 승호구역 입석동에 해당하며, 해당 양어장은 현재 ‘입석협동농장’의 양어장 으로 추정된다.
    10) 박근순, 앞의 책.
    11) 이채성 외(2007)에 따르면, 1913년 일제에 의해 최초의 관영 연어 인공부하장이 함경남도 고원에 설치되었다고 한 다. 이 양어장을 해방 이후 북한에 건설된 양어장으로 추정할 수 있다.
    12) 노동신문(2011.5.13.)에 따르면, 1949년 10월 당시 김일성 위원장이 이곳을 방문해 양어장 건설을 지시했다고 한다. 13) 박근순, 앞의 책에 따르면, 1946년 2월 원산에 국립 수산시험장이 창설되었으며, 청진과 철산에는 시험분장이 개설 되었다.
    1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수풍은 현재 평안북도 삭주군으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마주보고 있는 지역으로 1940년 일제는 70만 Kw의 수력발전소 건립을 위해 900m의 수풍댐을 건설했다. 수풍댐은 당시 한반도에 서 가장 큰 인공 호수 중 하나였다. 수풍호의 면적은 298.16km 2 , 둘레는 1,074.7km, 너비는 약 2.2km, 유효 저수량 은 76m 3에 달한다. 6.25전쟁 중 북한은 최후방 지역인 수풍호에 내수면 양식 시설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15) 박근순, 앞의 책.
    16) 위의 책, p. 191에 따르면, 1946년 북한의 수산업 생산 목표는 26만 톤이었다.
    17) 위의 책. 18) 조선중앙통신사(1957). 
    18) 조선중앙통신사(1957).
     

     

      
     1958년 11월 24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와 공화국 내각 공동회의에서는 1961년까지 바다양식 75만 톤, 내수면 양어 25만 톤 생산 목표를 설정하고 1959년 6월까지 양어 ‧ 양식 적지 조사사업을 결정했다19). 북한은 위의 <표 1>과 같이 지역별 생산목표를 설정했으며, 칠색송어(무지개송어) 양어장 1,000 정보(약 10km 2 ), 논판 양어 30만 정보(약 2,975km 2 ), 강ㆍ호수에 10만 정보(약 992km 2 )의 양어 면적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20).
     <표 1>과 같은 계획의 결과, 북한의 내수면 양어 면적은 1958년 80 정보(약 8km 2 )에서 1961년 19,000여 정보(약 188km 2 )로 확대되었으며21), 양어장의 숫자도 1963년 기준 43개로 늘어났다22). 하지만 1958년에 세웠던 생산 목표 달성에는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1958년의 계획이 주관적이고 무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수면 양어 생산목표가 제출된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1958년부터 북한의 다시마 양식이 본격화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23). 다시마 양식을 계기로 양어ㆍ양식 분야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관심이 높아지며, 1958년과 같은 무리한 계획 이 탄생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성과 여부는 차치 하더라도 북한의 지도부가 식량 공급의 관점에서 내수면 양어에 주목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당시 북한의 주요 양식 어종은 잉어, 칠색송어(무지개송어), 붕어였으며, 잉어의 비중이 높았다24). 잉어 양어는 주로 논판양어장에서 진행되었다25).
     1960~70년대에는 북한 내수면 양어의 주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군중적 양어의 틀을 마련한 것 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군중적 양어란 말 그대로 양어가 주업이 아닌 협동농장, 기업소 등에서 부업으로 양어를 진행하는 대중운동의 형태를 뜻한다. 1966년에는 내각직속 ‘양어총국’이 조직되었는데, 이와 같은 군중적 양어 운동의 확산을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1970년에는 북한 전역 280개 협동농장과 34개의 기관 및 기업소에서 양어를 진행했으며26), 1975년 내수면 양어 생산량은 약 7,000톤을 기록했다27). 이 기간 기념어(백련어)28), 숭어, 화련어(대두어), 산천어 등의 양식도 시작되었으며, 기념어(백련어)와 화련어(대두어)는 중국 어종이다.
     1970년대까지 경제발전과 함께 어선어업을 중심으로 북한의 수산업도 큰 폭으로 성장했다29). 하지 만 1980년대 이후 북한 경제 위기가 본격화된 이후에는 어선어업 가동률이 저하되며 수산업 생산량도 1985년을 기점으로 급락했다. 북한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어선어업 유휴인력 등을 바다양식에 집중했 다30). 하지만 북한 경제 전반의 몰락이 수산업 분야만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더구나 1990년대 중반 이상기후 및 해류와 수온 상태의 변화로 북한의 바다양식 집중 정책은 실패했다31). 위와 같은 흐름 속에서 내수면 양어에 대한 관심과 투자도 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1987년 약 1억 1천만 마리의 치어를 방류했다32)는 것 외 특별한 기록을 발견할 수 없었다.
     김일성 시대 북한 내수면 양어는 기초적인 생산 토대를 마련하고 전군중적 운동으로 생산시설을 확 대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전군중적 양어 운동은 현재에도 북한 내수면 양어의 주요한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현상으로, 김일성 시대에 그 전형이 마련되었다. 또한 1958년의 계획을 근거로 북한이 식량 생산의 대안으로 내수면 양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19) 노동신문(1958.11.30.).
    20) 고영인(1959).
    21) 조선중앙통신사(1961).
    22) 조선중앙통신사(1963).
    23) 노동신문(2015.9.17)에 따르면, 1958년 11월 김일성 수상이 황해남도에 건설 중이었던 ‘부포바다가양식사업소’에 직 접 다시마 종자를 마련해 보내준 것을 계기로 북한의 다시마 양식이 본격화 되었다고 한다. 박근순, 앞의 책, p. 396에서는 1960년 북한의 다시마 양식 생산량은 1956년 대비 5,692% 증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마는 현재에 도 북한의 바다양식을 대표하는 품종이다.
    24) 박근순, 앞의 책.
    25) 황진회 외(2009).
    26) 조선중앙통신사(1971).
    27) 조선중앙통신사(1976).
    28) 사회과학출판사(1992)에는 붕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로 백련어라고 불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념어라는 이름은 1958년 김일성 수상이 낚시 중 잡아 김일성종합대학에 보낸 이후로 양어가 시작된 것을 기념한다는 의미에서 붙여 졌다. 중국이 원산지이며 몸길이는 약 60~100cm, 무게는 최대 50kg에 달한다. 백련어라는 이름은 하얀 잉어라는 뜻 이다.
    29) 1960년대 북한 어선어업은 기존 어선의 동력과, 기계화, 대형화를 실현하며 원양어업에 진출하는 등 성장기를 맞이 하였다. 1950년대 후반 50만 톤 수준이었던 북한의 수산물 생산량은 1960년대 후반 100만 톤에 근접했으며, 1980년 대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해 1985년에는 역대 최대 생산량(178만 톤)을 기록했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진희권‧윤인주(2019) 참조.
    30) 김일성 주석은 1987년 11월, “바다가양식을 대대적으로 할데 대하여”라는 연설을 통해 10만 정보(약 992km 2 ) 바다 양식장 조성 목표를 제시하고 1992년까지 달성할 것을 지시했다. 1989년에는 다시마 150만 톤, 섭조개(홍합) 150만 톤 생산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목표 제시는 북한 경제위기의 징후로 해석하기도 하며, 당 연히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진희권(2020) 참조.
    31) 홍성걸‧베른하르트 젤리거(2011).
    32) 조선중앙통신사(1987). 

     

    2. 김정일 시대의 내수면 양식

     1990년대 북한 경제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33)이라 불리는 극도의 위기 상황을 겪었다34). 극심한 경제위기로 북한의 계획경제는 근저에서부터 흔들려 모든 산업 생산은 급격하게 감소했고 식량과 생필품의 심각한 부족35)으로 아사자가 속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대 178만 톤(1985년)을 기록했던 수산물 생산량도 약 62만 톤(1998년)으로 급감했으며, 수산업 생산구조는 사실상 와해되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북한은 식량 확보 차원에서 내수면 양어를 독려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북한 내수면 양어 활성화 정책의 시발점은 1997년 6월 3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황해남도 ‘룡정양어장’36) 방문으로 꼽을 수 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간부들에게 1) 양어를 발전시켜 인민들의 식생활을 개선하는 것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 2) 전당과 전민이 양어 발전에 나설 것, 3) 기존 양어장 개보수와 새로운 양어장 건설에 나설 것, 4) 인민군대가 양어의 본보기로 나설 것을 지시했다37).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문을 전후하여 평안북도 신창양어장, 함경남도 북청양어장 등의 관리가 군으로 이관되었으며38), 전국 곳곳에 양어장이 건설되었다. 또한 노동신문 보도 중 내수면 양어 관련 보도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양어장 방문은 <표 2>, <표 3>과 같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33) 이우영(2016)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1996년 신년공동사설에서 고난의 행군을 천명하였고, 2000년에 종료되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다. 또 다른 시각으로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 하반기부터 1997년까지로 보기도 하지만, 넓게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34) 양문수(2015)에 따르면 1990년부터 1998년까지 북한 경제는 9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실질성장률 기준)을 나타냈으며, 이 기간 북한의 GDP는 무려 30%나 감소했다.
    35) 양문수, 앞의 논문.
    36) ‘룡정양어장’은 북한에서 처음 룡정어(가죽잉어)양식에 성공한 양식장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를 기념해 가죽잉어에 룡정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문 당시에는 ‘룡연군종합농장 룡정분장’으로 불리었으나 후에 ‘룡정양어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고려 ‘룡정양어장’으로 칭하기로 한다.
    37) 김정일(1996).
    38) 위의 논문.
     
     
     <표 3>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일 위원장의 내수면 양어시설 방문은 사망 직전까지 꾸준하게 이어졌다39). 북한 정치의 특성상 최고지도자가 관심을 두는 분야는 국가의 중요정책이자 자원과 노동력의 우선 투자처이다. 특히 군을 앞세워 사회주의 위업을 실현하는 ‘선군정치’를 표방했던40) 김정일 위원장 시대에 내수면 양어를 군에 맡겼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내 수면 양어시설 현지지도는 총 29회였으며, 이 중 군에서 운영하는 생산 시설 방문은 총 18회였던 것 으로 추정된다.
     김정일시대 북한은 양어의 과학화ㆍ집약화라는 목표를 제시했으며, 메기양어에 집중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5월 9일41)과 9월 20일42) 새롭게 건설된 두 곳의 메기 양어장을 현 지지도하며 간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먹이 소비량이 낮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메기 양어를 결심”하고 “시범적으로 메기양어장을 꾸릴 것을 지시”했는데, “시범 생산을 통해 한 해 수 백 톤의 메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으니 완전히 성공”이라며 “메기공장43)과 양어장을 잘 꾸려 메기와 다른 물고기를 많이 생산”하자며, 구체적 과제로 메기 양어를 과학화ㆍ집약화해 대대적으로 진행할 것, 잉 어ㆍ칠색송어(무지개송어)ㆍ뱀장어ㆍ연어도 많이 기를 것, 양어를 전 군중적 운동으로 확대할 것, 메기요리 식당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44). 이를 통해 양어의 과학화ㆍ집약화는 사실상 당의 공식노선으로 규정되었다. 양어의 과학화, 집약화는 북한 양어의 발전 방향이자, 중심 기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과 의지로 통하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정일시대 북한 내수면 양어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첫째, 극도의 경제위기와 극심한 식량난 속에서 수산업을 통한 식량 생산의 대안을 내수면 양어에서 찾고자 했다는 점이다. 둘째, 내수면 양어의 급속한 발전을 목표로 북한식 사회주의 위업 수행의 주력군이라 할 수 있는 군에 임무를 맡겼다는 점이다. 기존 북한의 사업 방법 등에 비추어 보면 이는 해당 과업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조치이며, 군에서 모범적인 사업 방법과 정형을 창출해 민간에 확산하겠다는 의지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는 집약화, 과학화라는 내수면 양어 발전의 중장기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며, 넷째는 최고지도자의 직접 결심 하에 육상 양식인 메기양어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극심한 식량난 타개를 위한 대안의 하나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내수면 양어 분야를 지목하고 메기 양어를 결심했으며, 군에게 과업을 맡겼다고 정리할 수 있다. 김정일시대 북한에 새로 도입된 내수면 양식 어종은 <표 4>와 같다.
     
    39)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1년 12월 17일 사망했다.
    4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1)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5월 9일 방문했던 메기 양어장의 명칭은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2014년 12월 김정은 총 비서는 해당 양어장을 방문해 ‘5월9일메기공장’이라고 명명했다.
    42)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월 20일 방문한 메기 양어장은 ‘평양메기공장’으로 확인된다. 김정은 총비서는 2014년 12월 ‘평양메기공장’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의 2000년 9월 방문 사실을 언급했다.
    43) 해당 발언이 있었던 당시 담화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메기 양어장은 단순한 양어장이 아니라 최신과학기술에 기초하여 꾸려진 현대적인 물고기 생산 공장”이라고 했으며, 이와 같은 취지에서 양어장이 아니라 ‘메기공장’이라 칭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2000년 5월 9일 김정일 위원장이 처음 메기 양어장을 방문했던 당 시부터 ‘메기공장’으로 칭했다. 메기뿐만 아니라 뱀장어, 자라 양어장도 공장이라고 칭한다.
    44) 김정일(2007).
      

    Ⅲ. 김정은 시대 북한의 내수면 양식

    1. 김정은 시대 북한의 수산업 정책

     김정은 시대에 들어 북한은 수산업을 농업, 축산업과 함께 식량 생산의 3대 축이라 칭하며, 적극적으로 증산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정책의 배경에는 북한 경제가 1990년대 최악의 위기를 극복하고 점진적으로 회복되고 있었던 상황이 작용했다. 2016년 제7차 조선노동당대회 결정서에서는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반드시 풀고”, “인민들에 대한 식량 공급을 정상화하여야 한다”고 명시했 다45). 김정은 총비서 집권 이후 북한의 신년사에서는 수산업 정책 방향을 <표 5>와 같이 제시했다46).
     
     
     김정은 시대 북한 수산업 정책은 어선어업과 양어ㆍ양식 병행 발전으로 요약할 수 있다47). 즉 수산업 생산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의지로 이해할 수 있다. 경제 위기 속에서 어선 가동률 감소 등의 요인으로 생산량이 급감했던 어선어업 분야에 상대적으로 많은 투자를 진행했다. 특히 ‘조선인민군 수산사 업소’라는 생산 단위를 조직하고 어선어업 활성화에 군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시대부터 강조했던 내수면 양어에 대한 관심도 지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장에서 상세하게 기술하기로 한다.
     이와 같은 정책 추진의 결과, 북한 수산업 생산량은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 계청 기준 북한 수산업 생산량은 1985년 약 178만 톤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점차 감소해 1998년 62 만 7천 톤으로 최저점을 기록했다. 이후 점진적으로 상승해 2016년에는 100만 톤을 회복했다48).
     
    44) 김정일(2007).
    45) 노동신문(2016.5.9.).
    46) 북한은 매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한 해 국정운영의 방향 및 분야별 과업과 수행 방도를 제시했었다. 김일성 주 석은 1946년부터 1994년까지 매년 1월 1일 신년사를 직접 발표했으며, 이는 TV나 라디오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김정 일 국방위원장은 본인의 신년사 대신 「로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를 통해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하였다. 신년공동사설은 1995년부터 2012년까지 발표되었다. 2013년부터 김정은 총비서는 과거 와 같이 직접 신년사를 직접 발표했었으나 2020년부터는 발표하지 않고 있다.
    47) 진희권·윤인주(2019)
    48) 북한의 수산업 생산량은 2016년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등의 영향으로 다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7 년 약 88만 톤, 2018년 약 70만 톤, 2019년 약 74만 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 김정은 시대 북한의 내수면 양식

    김정은 시대 북한의 내수면 양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지 계승과 새로운 시도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지 계승이라는 측면은 메기 양어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을 들 수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14년 12월 두 곳의 메기공장을 방문했다. 이 두 공장은 ‘5월9일메기공장’과 ‘평양메기공장’으로 북한에서 최초로 건설된 메기 양어장이다. 바로 2000년 5월과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문했던 메기 양어장이다. 12월 23일 ‘평양메기공장’ 방문 당시 김정은 총비서는 양어는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사업이라며, 양어 활성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임을 강조했다. 또한 ‘평양메기공장’을 “양어부문의 본보기, 표준공장으로 꾸리자는 것이 당의 결 심”이라고 밝혔다49). 즉,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이어 내수면 양어 활성화 정책을 지속할 계획이며, ‘평양메기공장’의 모델을 표준화해 전국에 전파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후 2017년 ‘삼천메기공장’(황해남도 삼천군) 현대화 공사와 ‘순천메기공장’(평안남도 순천시) 건설이 완공되었으며, 2018년에는 ‘린산메기공장’(황해북도 린산군), 2019년에는 ‘함흥메기공장’(함경남도 함흥시), ‘배천메기공장’(황해남도 배천군), ‘운산메기공장’(평안북도 운산군)이 완공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 소형 메기 양어장 건설이 계속 추진 중이라고 북한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이 중 ‘삼천메기공장’은 김정은 총비서가 세 차례50)나 방문한 북한 최대 규모의 메기 양어장이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삼천메기공장’은 연건축면적 9만 여 m 2에 각종 생산과 관리 시설의 전산화, 자동화가 이루어져 연간 3,000톤의 메기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현재까지 생산 능력이 확인되는 ‘삼천메기공장’(3,000톤), ‘평양메기공장(1,800톤)’, ‘순천메기공장(1,200톤)’, ‘5월9일메기공장(800톤)’의 생산능력만 합해도 연간 6,800톤의 생산이 가능하다.
     김정은 시대 북한 내수면 양어의 새로운 시도는 내수면 그물우리(가두리)양어 확산 정책이다. 2015 년 11월 김정은 총비서는 평양 대동강에 새로 건설된 그물우리(가두리)양어장51)을 찾아 전국의 강과 호수에 그물우리(가두리)양어를 대대적으로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 아울러 선대 수령의 유훈을 따라 “우리나라를 하루 빨리 세계적인 양어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이 당의 의도”라며 양어 발전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52).
     2016년 제7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수산 부문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그물 우리 양어를 널리 전개할 것”을 지시했다53). 이후 북한 전역에 그물우리(가두리)양어장이 새로 설치되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2016년 한 해에만 천 개 이상의 그물우리(가두리)양어 시설이 새로 조성 되었으며54) 2017년 11월까지 270여 개의 그물우리(가두리)양어장이 새로 설치되었고, 생산량은 두 배로 증대되었다고 한다55).
     북한은 그물우리(가두리)양어가 양수동력 설비가 전혀 필요 없으며, 인력과 먹이를 절약하면서도 물고기 생산량을 늘릴 수 있어 경제성이 대단히 크다며 그물우리(가두리)양어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현재 북한이 설치하고 있는 그물우리(가두리) 양어 시설은 목재와 스티로폼, 쇠를 이용해 제작하고 있으며, 주로 농어, 룡정어(가죽잉어), 잉어, 쏘가리, 메기, 붕어, 기념어(백련어) 등을 키우고 있다. 이와 같은 그물우리(가두리)양어장은 현재에도 계속 늘어나고 있어 그 성과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물우리(가두리)양어는 김정은 총비서가 세계적인 양어의 나라를 만들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이며 새롭게 추진하는 정책인 만큼 그 성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김정은시대에 들어 북한은 쏘가리를 인공먹이에 순치시키는데 성공56)해 ‘연풍호방류어업사업소’와 ‘태천종어사업소’에서 치어를 생산해 연풍호57)와 태천호58)에 방류했다고 한다59).
     북한은 먹이(사료), 종어, 물을 양어의 3대 요소로 규정하고 관심을 쏟고 있다. 자연먹이 이용과 사료 공장 신축, 새로운 사료 개발 등을 진행 중이다. 자연먹이를 이용하는 방법은 양어-축산 고리형 순환체계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이는 축산에서 배출되는 배설물과 도축 폐설물 등을 양어 먹이로 활용 하는 방법으로 주로 지역의 중소형 양어장에 적극 도입하고 있다60). 최근에는 ‘뿔물등에’ 생산방법을 확립해 양어는 물론 축산 등에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북한에 따르면, ‘뿔물등에’는 파리류와 달리 사람들에게 해를 주지 않아 환경적ㆍ경제적으로 유익한 곤충이며, 조단백과 조지방 함량이 풍부해 건조 시켜 사료 및 여러 형태로 가공ㆍ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61). 또한 1m 2의 면적에서 최대 10kg 이상 생산할 수 있어 경제성도 높다고 한다.
     2015년에는 ‘조선인민군 어분사료공장’이 완공되었다. 부지면적 약 25,000m 2 , 건축면적 약 2,950m 2 의 공장은 사료 가공장, 선별 및 냉동실 등을 갖추었으며, 연간 2,000톤의 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공장에서는 건뎅이, 까나리, 멸치, 도루묵 등을 이용하여 칠색송어(무지개송어), 철갑상어, 룡정어(가죽 잉어) 등의 사료를 생산하고 있다62).
     최근에는 ‘팽화먹이’라는 기술을 개발해 메기 양어에 활용하고 있다. ‘팽화먹이’는 어종과 성장단계 별 특성에 따라 과학적인 지표로 혼합된 배합먹이를 일정한 크기로 성형할 때, 미세한 기포를 형성해 주는 기술을 뜻한다63). 생산 공정은 원료 분쇄, 혼합, 팽화, 가열ㆍ건조, 피복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세한 생산 공정은 <표 6>과 같다. ‘팽화먹이’는 배합먹이에 비해 물에 녹는 양이 훨씬 적으며, 10시 간 이상 물에 떠 있어 소화흡수율과 먹이 이용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64).
     북한의 시대별 내수면 양식 정책과 특징을 아래 <표 7>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49) 노동신문(2014.12.23.)
    50) 김정은 총비서는 2015년 12월 삼천메기공장 첫 방문 당시 공장을 “세계적 수준의 메기공장으로 현대화”할 것을 지시했다. 2017년 2월, 두 번째 방문은 삼천메기공장 현대화 공사 완공을 맞아 지시 사항을 확인하기 위한 방문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장에서 연간 3,000톤 생산 과업을 제시했다. 2018년 세 번째 방문은 3,000톤 생산 과업을 달성한 공장의 성과를 치하하기 위한 목적의 방문이었다.
    51) 해당 신문기사에 따르면 대동강에 설치된 그물우리양어장은 약 1,600m 2의 면적에 그물우리, 종합조종실, 사료창고, 휴게실 등이 꾸려져 있으며 태양열로 양어장 관리, 운영에 필요한 동력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기념어(백련어), 룡정어(가죽잉어), 잉어, 조개 등을 층층이 배치해 키우고 있으며, 2016년 9월 처음 물고기를 생산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기념어, 룡정어, 잉어, 변두조개(귀이빨대칭이) 등 10여 톤을 수확했다고 한다.
    52) 노동신문(2015.11.18).
    53) 노동신문(2016.5.8).
    54) 조선신보(2016.11.11).
    55) 노동신문(2017.11.17).
    56) 노동신문(2019.6.16).
    57) 조선중앙통신(2002.1.11.)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연풍호는 평안남도 안주시와 개천시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인공호수로, 둘레 88km, 면적은 14.87km 2.
    58) 평안북도 태천군 태천저수지를 칭하는 것으로 추정. 북한은 1980년대 태천군을 관통하는 대령강을 막아 저수지를 건설했다.
    59) 노동신문(2020.7.11).
    60) 노동신문(2016.8.3).
    61) 내나라(2020.10.24).
    62) 노동신문(2015.3.24).
    63) 노동신문(2016.3.14).
    64) 통일의 메아리(2019).

    Ⅳ. 내수면 양식 분야 남북협력 추진 방향

     수산업 분야 남북협력사업은 1950년대부터 북측의 일방적인 제안 형식으로 간헐적으로 언급되어 왔지만65), 남북한 수산 분야 협력이 본격 추진된 것은 1988년 7.7선언 발표 이후이다66). 1988년 11월, 현대종합상사가 북한산 모시조개 40kg을 직접교역 형태로 반입하면서 남북 간 최초의 수산물 직접교 역이 성사되었다67). 1990년대에는 정부의 품목별 반입승인 제도 하에서 주로 명태, 복어, 게, 바지락, 가리비, 어란 등을 중심으로 수산물 반입이 이루어졌으며, 북한산 수산물 반입 규모는 1989~90년 약 56만 6천 달러에서 1999년 약 2천 8백 26만 달러, 2009년에는 1억 4천 8백만 달러로 증가하며 최대치를 기록했다68). 1990년대 북한산 수산물 반입과 함께 수산 부문 합작 투자, 기술교류 등도 추진되었으나 구체적인 성과를 남긴 사업은 없었다.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공동어로 사업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으나 공동어로 구역 지정 등의 이견으로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수면 양식분야 남북협력 사업은 2008년 민간차원의 뱀장어 양식 사업이 추진되었으나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69). 내수면 양식 분야에서 남북협력이 실현된 경우는 강원도의 사례가 유일하다. 강원도는 연어자원 보호증식과 북한 식량난 해소를 위해 2001년 4월부터 2005년 4월까지 4차에 걸쳐 연어 치어 205만 마리를 북한과 공 동 방류했다70). 이후 강원도의 지원 하에 2003년 12월에는 북한지역 강원도 안변군 과평리 남대천변에 ‘안변연어부하장’이, 2005년 9월에는 사료공장이 건설되었다.
     이 외에도 수산업 분야에서 여러 남북협력 사업이 추진되었으나 구체적인 성과를 남긴 사업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그간 남북관계 발전과 타 분야 남북협력 사업 추진 성과에 비추어 보 면 수산업 분야 남북협력은 북한산 수산물 반입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이에 대한 논의는 본 논문의 논지에서 벗어나는 바, 구체적 평가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상과 같은 현황과 현재의 남북관계 및 유엔의 대북제재, 북한의 식량위기 및 수용 가능성을 감안하면 내수면은 남북한 수산 협력 추진의 대안 공간으로 가치가 높다. 북한 내수면 양식 분야는 식량 공급을 위한 인도적 협력 사업의 영역으로 유엔 제재에 저촉되지 않거나 제재면제 가능성이 높다71). 또한 북한도 식량 및 단백질 공급원 확보 차원에서 내수면 양식 분야를 강조하고 있어 북측의 수용 가능성도 높다. 내수면 양식 분야에서는 다양한 내용과 규모의 협력사업도 용이하다. 남한은 북한에 비해 내수면 양식에 대한 기술 수준이 월등해 다양한 지식공유사업(KSP: Knowledge Sharing Program)72)의 추진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소규모 사료 지원에서부터 시설ㆍ장비 지원, 대규모 생산 시설 투자까지 다양한 규모의 협력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내수면 분야는 남북협력의 공간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내수면은 사업 성격에 따라 수산업의 일부로, 때로는 육상의 연장선에서 남북협력이 가능한 공간일뿐더러 내수면의 특성에 맞는 독자적이고 새로운 협력사업도 추진할 수 있다. 내수면 양식 분야 협력을 통해 수산업 분야 남북협력사업의 물꼬를 트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으며, 남북협력사업의 새로운 주체를 발굴할 가능성도 높다. 과거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북한산 수산물 반입은 유엔제재로 금지된 상황이다. 공동어로 등의 사업은 남북한 정부 간 협의가 필요한 사업으로 정치적으로 예민하며,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참여할 수 있는 주체가 한정적이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 성격의 내수면 양식 협력은 비록 규모가 작더라도 다양한 지자체, 민간단체, 기업 등이 참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수산업 분야 남북협력의 저변과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국민들의 관심을 제고하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내수면 양식 분야 는 정부 차원의 협력보다는 지자체나 민간단체가 주도하는 형식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간 남북협력의 경험과 성과가 상당히 축적되어있는 농업, 임업 분야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 내수면 양식분야 협력의 초기 단계에서는 양식 사료, 종자 지원 등의 인도적 지원을 통해 물꼬를 트는 전략이 유용할 것이라 판단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대북 인도적 지원은 유엔제재에 저촉되지 않거나 제재 면제가 가능하다. 또한 북한도 먹이(사료), 종어(종자), 물을 양식의 3대 요소로 규정하며 중요시하고 있을 뿐더러 사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 라 북한의 수용성도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한 내수면 양식분야 협력 확대 단계에서는 지식공유사업 및 자재ㆍ시설지원 등의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 생각한다. 초기 협력을 통해 내수면 남북협력 주체 간 신뢰 확보 및 경험ㆍ성과를 축적한 이후 협력의 범위와 폭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북한 내수면 양식 현황 및 기술수준에 대한 파악 후 적절한 형태의 지식공유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북한 내수면 양식 자재ㆍ시설 지원도 고려할 수 있다.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대북제재로 북한은 여러 산업부문에서 자재와 원료의 부족을 겪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폐자재 재활용을 적극 장려 하고 있다.
     양식분야에서도 파(波) 밧줄을 재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73). 뿐만 아니라 최근 북한에서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는 내수면 그물우리(가두리)양식은 수질오염과 부영양화의 주요인으로 지목되고 있 다74). 특히 북한의 내수면 그물우리(가두리)양식은 목재와 스티로폼, 쇠 등을 이용하고 있어 자연재해에 취약할뿐더러 수질을 오염시킬 우려가 있다75). 따라서 내수면 양식에 필요한 각종 자제와 함께 시설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북한의 내수면 양식 생산량 증대에 큰 영향을 줄 뿐 아니라 환경 및 수질 오염을 완화시키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자재 및 시설지원은 유엔의 대북제재 저촉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초기 사업의 인도적 성과를 바탕으로 국제사회를 설득해 제재 면제를 승인받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남북한 내수면 양식분야 협력의 전면화 단계에서는 남한 기업의 직접투자까지 범위를 확대할 수 있 다. 과거 남한 기업이 남포에 뱀장어 양식장 운영을 추진한 경험이 있는 만큼 고부가가치 어종 등을 중심으로 직접투자는 물론 개발협력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상의 과정을 <표 8>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65) 북한은 1955년 처음으로 수산당국자간 협상을 제안하고 남북한 어장의 상호 이용을 제시했다. 1958년에는 수산상· 내무상 공동성명, 1960년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편지 형식으로 남북 공동어로를 제안했었다. 이후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진행된 남북조절위원회에서 북한은 어장 개방을 제의한 바 있으며, 1982년 전두환 정 부는 ‘20개항 평화통일시범실천사업’을 북한에 제안하며 이 중 9조 남북어로를 포함했었다.
    66) 공식 명칭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이며, “자주‧평화‧민주‧복지의 원칙에 입각하여 민족구성원 전체 가 참여하는 사회ㆍ문화ㆍ정치ㆍ경제공동체를 이룩함으로써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의 새 시대”를 열러나가기 위해 6개항의 정책 추진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1) 남북 동포 간 상호 교류 및 해외 동포의 자유로운 왕래 를 위한 문호 개방, 2) 이산가족 문제의 적극 해결, 3) 남북 간 교역 개방, 4) 민족경제의 균형발전과 우방국의 대북 교역 불반대, 5) 남북 간 대결 외교 지양 및 국제 무대에서의 협력과 지원, 6) 북한과 남한 우방과의 관계개선, 남 한과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개선 등이다.
    67) 박준모(2019).
    68) 박성준(2013).
    69) 2008년 6월 대동수산은 대북지원사업자 승인을 받아 북측의 광명성총회사와 함께 남포에서 뱀장어를 양식해 가공하 는 사업을 추진했다. 남포 현지에 양식장을 건립하고 보온 시스템 등의 설비까지 갖추었으나 남북관계가 악화되며 사업은 중단되었다.
    70) 북한은 안변 남대천, 남한은 고성 남강에 방류했다.
    71) 정부의 ‘인도적 대북지원사업 및 협력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의 제2조에서는 인도적 대북 지원사업을 아래에 해당 하는 사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1 .이재민의 구호와 피해복구를 지원하는 사업 2 .식량난 해소를 위한 농업개발지원에 관한 사업 3 .보건위생 상태의 개선 및 영양결핍 아동과 노약자 등을 지원하는 사업 4 .자연재해 예방차원에서 산림복구 및 환경보전 노력을 지원하는 사업 5 .기타 대북지원사업의 특성을 고려하여 통일부장관이 인정하는 사업 위와 같은 정의에 따르면 북한 내수면 양식 지원 사업은 2호 또는 3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법령의 전체 내용은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72) KSP 홈페이지에서는 KSP를 협력국에 맞춤화된 정책제언을 제공하는 지식기반 개발협력사업이라고 정의하고, 국가 간 개발경험을 상호 학습함으로써 긴밀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비롯 국제사회의 개발 이니셔티를 이행하는 수단으로 삶의 질 향상과 공동번영을 도모한다고 설명한다.
    73) 노동신문(2020.2.5).
    74) 환경부, <http://www.me.go.kr>.
    75) 해양수산부 어촌양식정책과(2014)에 따르면 북한과 같이 목재 등을 이용한 시설을 ‘목재 가두리 양식장’으로 분류하 고 있으며, 최근 수산양식시설 현대화를 통해 내구성이 높은 ‘내파성 가두리 양식장’이 보급되고 있다고 한다.

    Ⅴ. 결 론

     북한의 내수면 양식은 일제 강점기에 마련된 생산시설을 바탕으로 출발해 1960년대까지 초보적인 생산토대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6.25전쟁 이후 전후복구와 본격적인 경제개발 분위기 속에서 식량증산을 위해 바다양식과 내수면 양어에 주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언급했던 1958년 수립했던 생산목표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76). 물론 1958년의 계획은 실패했지만, 이후 북한은 전 군중적 내수면 양어 확산 운동을 벌여 1970년대까지 약 300여 개의 소규모 생산시설을 마련하며 나 름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90년대 최악의 식량난 속에서 다시 북한은 내수면 양어를 통해 식량생산의 대안을 찾고자 했다. 1997년 6월 30일 ‘룡정양어장’ 방문을 계기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내수면 양어장 확대를 직접 독려하고 나섰다. 특히 내수면 양어 활성화를 인민군에 맡긴 점과 메기 양식의 시작은 김정일시대 북한 내수면 양식의 주요한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김정은시대에도 북한의 내수면 양식 독려 정책은 지속되고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김정일시대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메기 양어 확대와 함께 내수면 그물우리(가두리)양식장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와 같은 정책을 통해 북한을 세계적인 양식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직접 밝히기도 했다.
     위와 같이 북한의 내수면 양식은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서 식량생산의 대안으로, 최고지도자의 직접적인 관심대상이다. 김정일시대부터 본격화된 이와 같은 상황과 관심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또한 유엔제재, 내수면 양식의 국제적 동향 등을 종합 검토하면, 인도적 지원을 통해 수산업 남북협력의 물 꼬를 트는 데 내수면 양식 분야가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내수면 양식 분야 남북협력 사업은 남북한의 준비와 대북제재 상황 등을 고려하여 초기-확대-전면 화 단계로 나누어 추진할 수 있다. 초기 단계에서는 유엔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인도적 지원을 추진 하며, 남북의 협력 주체를 마련해 상호 간 이해와 신뢰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 확대 단계에서는 지식 공유 사업과 자재ㆍ시설 지원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초기 단계의 성과를 토대로 북한 내수면 양식 현 황에 맞는 기술 및 경험 전수 사업을 진행할 수 있으며, 자재 및 시설 지원을 유엔 제재의 틀 내에서 모색해 볼 수 있다. 끝으로 전면화 단계에서는 개발협력은 물론 민간기업의 직접투자도 가능할 것으 로 기대한다.
     이상과 같이 북한 내수면 양식의 동향을 검토하고 남북협력의 추진 방안을 고민해 보았다. 그동안 연구가 부족했던 북한 내수면 양식 정책을 시대별로 파악하고 남북 수산협력의 관점에서 검토했다는 점에 본 논문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의 정책 추진 결과 내수면 양식 생산량에 의미 있는 변화가 발생했는지, 실제 식량난 해소에 기여하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자료의 부족이라는 뻔한 핑계를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 내수면 양식 생산량에 대해서는 국제기구 등의 일부 추 정치가 존재하나 연속성이 부족하고 출처별 편차도 심해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본 논문의 한계이자 향후 연구 과제로 남기기로 한다. 
     
    76) 1958년의 11월 24일 회의와 그 결과는 여러 면에서 의문점을 남긴다. 첫째, 회의 형식이 이례적이다. 조선노동당 중 앙위원회 상무위원회 공화국 내각 공동회의라는 형식은 전례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북한의 역사에서 찾아보 기 힘든 형식이다. 둘째, 회의와 목표설정의 시기 문제이다. 당시 북한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57~1960년)을 수립 하고 나름의 계획 속에서 경제발전을 추진 중이었다. 5개년 계획 중인 1958년 연말에 이와 같은 대규모 계획을 발 표한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셋째, 실현 불가능한 과도한 목표이다. 이상의 상황을 종합해 보았을 때, 당시 회의와 목표 설정은 아래로부터 수립된 계획이 아니라 김일성 주석의 결심과 지시에 의한 결과라고 추정된다. 앞서 언급했 던 것처럼 1958년 다시마 양식을 계기로 바다양식과 내수면 양어를 통해 식량난 해소의 대안을 찾고자 했던 것으 로 분석할 수 있다. 

    Figure

    Tabl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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